글번호
865574

2023-글로컬과 대학개혁의 혼선

작성일
2023.12.21
수정일
2023.12.21
작성자
교수평의회
조회수
138

글로컬 재신청에 앞서 생각해야 할 것들, 대학개혁을 꿈꾸고 실현하자!

 

글로컬 10에 탈락한 대학을 포함하여 그 밖의 많은 대학들에서 통폐합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부산 부경대와 국립해양대는 통합에 진전이 있는가 하면, 경북대와 금오공대 통합시도는 오히려 학생들의 거센 반발로 무산되었다. 모두가 글로컬 사업를 따내려 혈안이 되어 있다. 2021년 진주 경상대와 경남과학기술대가 통합되어 2022년부터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이번 글로컬 사업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뿐만 아니라 글로컬 신청을 앞두고 통합을 시도했던 대학들인 부산대-부산교대, 안동대-경북도립대, 충북대-한국교통대, 강원대-강릉원주대는 모두 글로컬 사업에서 최종 선정되었다. 이것이 장차 약이 될지 독이 될지 두고 볼 일이지만 어쨌든 이러한 통합의 바람은 전혀 새롭지 않으며 대세이다.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경쟁력 저하, 4차 산업혁명 시대 지식경제의 전면화, 인공지능(AI) 출현과 노동시장의 변화, 사회 양극화와 지역경제의 악화, 그 결과 수도권 대학으로 집중화하는 대학병목 현상은 지역불균형을 심화시키면서 대학의 위기를 한층 더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대학의 통폐합과 구조조정 그리고 특성화 (필살기) 이미 10여년 전부터 시도되어 왔다. 전남대는 여수대와 경북대는 상주대와 이미 통합을 한지가 꽤 되었지만 그 효과는 그다지 커 보이지 않으며, 경북대 통합의 경우 빈깡통통합이라는 불만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통합을 이미 완료했으나, 영호남을 대표하는 두 거점 대학은 모두 글로컬에 탈락했다.

이러한 대학 통폐합과 구조조정 그리고 특성화 추진은 전 세계적 현상으로 우리 만의 일도 아닐 것이다.

 

전남대 본부는 11월 글로컬 탈락의 고배를 마신 뒤 2024년 새해 벽두부터 글로컬 사업에 재차 신청하려는 움직임이다. 그런데 먼저 대학 당국과 교육부가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한국 대학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향후 대학 경쟁력 강화는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는가? 어떤 철학과 원칙 속에서 정책이 나와야 하는가이다.

 

공교육이 무너진 자리를 사교육 시장이 이미 차지했고 해를 거듭할수록 서울로만 과밀 집중화하는 대학병목화, 공간병목화 현상은 역대 어느 정권도 해결하지 못한 채 전국민을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은 요원해 보인다.

 

SKY만 바라보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끝없는 기대 그리고 이를 조장하는 사교육 시장의 확대 속에서 입시지옥화한 한국의 대학병목현상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역대 어느 정부도 막지 못했다. 교육이 백년지대계라고 했지만, 정부의 교육정책은 교육철학의 빈곤 속에서 백약이 무효한 듯하다. 어설프게 학생인권만 강조하다 심지어 학생과 교사를 대치시켜 서로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한국의 대학은 지식을 창조하는 창조권력의 산실이 아니라 지위권력을 추구하는 곳으로, 학문보다는 학벌을 우선시 하는 곳으로 변질된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 결과 한국의 대학이 글로벌 연구중심대학으로의 발전은 지체될 수 밖에 없었고, 글로벌 대학 경쟁력은 여전히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2020년 통계로 볼 때 1년에 15천억이 넘는 예산을 받고 있는 서울대학도 세계대학학술순위’(Academic Ranking of World University: ARWU)에서 밝힌 연구중심대학 글로벌 순위에서 볼 때 100위권 밖에 있었다. 수학 필즈상을 딴 해외 동문 덕분에 2023년 간신히 100권에 진입해 94위로 4단계 상승했을 뿐 여전히 다른 기타 국내 소위 명문대학들은 200-400위권 밖에 있고, 거점국립대인 부산대와 경북대는 올 해 400-500위에 처음으로 들었다. 2023년 전에 500위권에 머물던 부산대처럼 전남대도 2020년에는 국내 공동 12위로 세계 500-600위권에 있었다가 2023년에 600-700위권으로 밀려났다. 글로벌 경쟁력 측면에서 부산대가 상승한 것과 대조적으로 전남대가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대목이다. 이처럼 창조권력을 외면한 한국대학의 독점적 지위권력화 현상은 결국 글로벌 대학 연구 경쟁력이 얼마나 취약한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고질화된 입시지옥과 대학병목 현상은 온 국민을 고통 속에 빠뜨리고 있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그리고 결과가 정의로와야 한다고 외쳤던 조국 전 장관 마저 이러한 지위권력을 추구하다 결국 입시지옥의 희생양이 되었다. 심지어 개혁적이었던 문재인 정부 조차도 교육철학의 빈곤과 정책 혼란 속에 빠져 학종/정시 논란에 매여 허송세월을 보냈을 뿐이다. 윤석렬 정부 역시 교육 카르텔 폐지, 교권 강화, 대학 개혁을 운운하지만 근본적으로 한국 사회의 입시지옥화 대학병목화 현상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대학 개혁 차원에서 라이즈(RISE)-글로컬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한국 교육의 고질적 병폐인 입시지옥 및 대학병목화 현상, 학벌 및 지위권력만을 추구하는 획일적 가치지향 사회, 수도권 과밀화를 조장하는 지역 공간권력화 현상을 전혀 개선할 수 없고, 오히려 한국 사회의 교육 및 지역 불평등 문제를 더욱 더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전공 제도나 글로컬 사업으로 글로벌 대학으로 발전을 보장하겠다는 발상 역시 선진국 대학들의 개혁 방향과는 전혀 맞지 않고 무늬만 흉내내는 정책이기 때문에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무전공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국립대학의 근간인 기초학문의 붕괴를 촉진시키는 친시장화 정책일 뿐이다. 세계의 글로벌 대학들은 다원적 가치와 상향식 평준화 토대 위에서 연구중심대학에 매진하고 있지 획일적 지위권력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학벌 지대추구형 사회(rent-seeking society)는 결국 글로벌 대학 경쟁력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전국민들로 하여금 병목사회에 살면서 엄청난 사교육 비용지출과 고통을 연장시킬 것이기에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것이다. 대학개혁에 관한 교육부의 철학의 빈곤과 정책의 부재는 라이즈, 글로컬 사업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면 대학 개혁의 전략과 방향 그리고 정책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 것인가? 대학개혁이 있어야 입시지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글로벌 대학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개혁의 방항은 크게 4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전국 10개 지역의 거점대학 10곳을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로 묶는 것이다. 이 구상은 이미 20년 전 국립경상대학의 정진상 교수의 책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입시지옥과 학벌사회를 넘어서> (2004)에서 피력된 바 있다. 이 구상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경희대 김종영 교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2021) 책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시스템을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연구중심대학 모델인 UC 시스템(University of California System) 10개 대학모델을 벤치마킹해서 글로벌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발전시키는 대학개혁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다 아는 바와 같이 1960년대 만들어진 캘리포니아 대학 3중 연합체제는 3가지로 분류된다. UC Berkeley, UCLA와 같은 글로벌 수준의 4년제 연구중심대학 10개교, 4년제 교육중심대학인 캘리포니아 주립대학(California State University: CSU) 23개교, 2년제 직업중심대학인 California Community College: CCC) 116개교이다. 거점국립대 통합네트워크는 파리 1~13 대학명칭처럼 가칭 국립 한국대’(National University of Korea) 10개교를 한국1대학~한국10대학순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국립한국대 모델은 우선 캘리포니아 연구중심대학 모델을 따르는 것으로서 먼저 연고대 수준에 달한 뒤 장차 서울대 수준으로 나아간다는 장기적 전략이다. 요컨대 정부는 SKY 집착형 병목 사회로부터 벗어나도록 확고하게 정책 방향을 잡는 것이 필요하다. 이 정책의 효과는 학부모들로 하여금 자식들을 마지못해 지방거점대학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수준의 연구중심형 혁신적 거점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선택폭을 넓혀줌으로써 대학병목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 균형 발전에도 부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100년 전 시카고, 칼텍, 스탠포드 대학들은 듣보잡 지잡대’ 3류수준 지방대학에서 글로벌 연구중심대학으로 약진해왔다는 점에서 지방대가 글로벌 대학으로 발전할 수 없다는 비관론은 버려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현 교육부가 추진하는 라이즈, 글로컬 30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의 대상은 10개 거점 국립대학이며, 가칭 국립 한국대 10곳인 거점대학들에 산학협력단 예산 밖의 교비 예산 가운데 대학 등록금 예산은 빼고, 정부의 거점대 지원액( 2020년 기준 평균 1265억 원)에다 추가로 연 3.500억 정도씩 대폭 지원하는 것이다. 서울대 지원액인 4866(2020년 기준)수준으로 거점대학에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글로컬 10개 대학 선정에서 글로벌 연구중심대학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낮은 대학인 가령 안동대-경북도립대나 순천대학에 1000억씩 지원하여 경쟁력 있는 연구중심대학인 경북대와 전남대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는 의문으로 남을 수 있다.

따라서, 정부 지원의 조건은 대학의 통합과 특성화일 것이다.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 추세 속에서 2022년도 한국의 출생아는 25만명이하로 떨어졌다. 향후 10~20년 내다보면 대학의 통폐합은 불가피하다. 가령 광주전남 권역의 경우 목포대, 순천대, 광주과기원을 우선 전남대로 통합하고 장기적으로 공영형 사립대를 지향하는 조선대도 전남 국립대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광주전남 권역에 국립 한국대 (전남 광주캠퍼스, 여수캠퍼스, 순천캠퍼스 등...)로 통폐합하는 것이다. 이것은 2010년 이래 프랑스 정부가 파리 지역의 각 대학 및 전문대, 연구소 등을 통폐합한 모델과 유사하다. 즉 프랑스 파리 샤클레, 소르본느 대학, PSL 대학 모델처럼 국립대학, 연구소, 기관들까지 통합하는 모델을 시도해보는 것이다.

 

둘째, 11거점 대학으로 집중하는 10개 국립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 차원에서 공동학위제공동교수제’(교환교수제)를 시도하자는 것이다. 우선 고려할 수 있는 모델로 달빛 연대’(경북대-전남대) 공동학위 및 공동교수제를 도입하여 학생들의 수업 선택권을 확대하면서 경북대와 전남대의 대학 인프라를 공유하여 글로벌 연구중심대학으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셋째, 특성화는 필살기처럼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분야나 학과를 집중 육성 확대하는 것이다. 가령 미국의 로스쿨 없는 프린스턴 대학, 의대 없는 UC버클리는 다른 분야를 중심으로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특성화되어 있으며, UC 샌프란시스코는 의대로 특성화하여 의학과 생명공학에서 세계최고의 대학으로 군림하고 있다. 미시간 대학은 심리학과에 무려 100명이 넘는 교수가, UC 버클리는 물리학과에만 84명의 교수가 있어 다양한 수업을 개설하여 글로벌 특성화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에 단과대 특성화 뿐만 아니라 학과 특성화도 중요하다고 본다. 전남대의 경우 우수한 분야인 에너지 공학, 나노 공학, 반도체 AI 공학, 의약학, 식품공학, 자연대 기초학문, 사회과학대학의 심리학 분야 등을 특성화시켜 육성해야 할 것이다.

 

넷째, 세계는 승자독식형 도시화’(Winner-Take-All Urbanism), 슈퍼스타 도시화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 서울로 자본, 산업, 인재, 인프라, 취업 시장 등이 몰리면서 극심한 대학병목, 지역병목, 공간병목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지식산업, 문화 산업이 주가 되고 있는 시대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광주시 역시 혁신적인 도시로 탈바꿈되어야 하며, 샌프란시스코처럼 지산학 협동체제가 이뤄져야 인재 유출을 막을 수 있다. 첨단지식과 기술로 대표되는 혁신 계층인 창조계급이 경제와 문화를 만들기에 창조적인 인재를 양성 유치하고 확장시키려는 대학과 지자체 그리고 기업 및 주민들 간의 지역 공동체의 합심노력(Zusammenarbeitung)이 절실하다고 본다.

 

더 이상 교육철학과 비전이 부족한 교육부에 우리 대학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 새로운 대학 개혁의 대안을 함께 적극적 모색할 때이다. 라이즈와 글로컬을 넘어서는 대학개혁안이 나와야 할 것이다.

 

 

2023. 12. 21.

 

 

전남대학교 제42대 교수회장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