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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회장 기고문] 4.10 총선 이후 한국정치에 대한 단상
- 작성일
- 2024.05.09
- 수정일
- 2024.05.09
- 작성자
- 교수평의회
- 조회수
- 115
4.10 총선 이후 한국정치에 대한 단상(斷想)
김 재관(교수회장)
윤석열 정부 집권 이래 근 2년만에 처음으로 여야 영수회담이 열렸다. 윤 정부는 총선 패배를 통해 준엄한 민심의 심판을 받았고, 그 돌파구로 마지못해 영수회담에 응한 것 같다. 그러나 국민들은 영수회담을 통해 극한대립의 한국정치를 뛰어넘을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와 변화를 읽을 수 없었던 같다. 외관상 정권심판 차원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것 같지만, 박빙의 근소한 표차로 이겼을 뿐이다. 게다가 비례대표 정당지지도에서 한국 정치의 바로메터격인 호남의 민심이 민주당 보다 신생 조국혁신당에 더 많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을 민주당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정작 이 선거는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점, 극단대립의 폐단과 승자독식의 5년 단임제 ‘대통령제의 위험’, 패권적 양당체제의 문제점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다시금 한국 정치개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정치권은 주기적으로 열리는 각종 선거승리와 집권욕에만 혈안이 되어 국민들을 대중인기영합식 포퓰리즘에 기반한 극단적 혐오· 불신· 대립의 정치, 곧 소위 광팬이 난무하는 ‘팬덤’(fandom) 정치를 조장해왔다. 그 결과 오히려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건전한 정당정치의 발전을 질식시키고 있다. 국민들이 보다 안심하고 극단적 대립 없이 행복하게 믿고 살 수 있는 정치제도의 개혁과 혁신적 돌파구를 모색할 때이다. 몇 가지 제도 개선책을 생각하면서 제안해보고자 한다.
첫째, 무엇보다 한국 정치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한국정치는 제도적으로 1987년 개헌 이래 5년 단임 대통령제 하의 패권적 거대 양당체제에 기반하여 굴러왔다. 이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 제도는 만성적으로 극한적 대립과 갈등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든 극단의 정치 구조를 확대재생산해왔다. 한국의 5년 단임제 대통령중심제는 승자독식 제도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대립의 양당제로 좁혀질 수 밖에 없다. 이 제도가 사회통합을 줄 것이라는 예상과 기대와 달리 오히려 사회 및 정치안정을 뒤흔드는 제도로 변질되었다. 정치세력 간 타협과 조화의 연대의 정치를 기대할 수 없다. 또한 때때로 집권 행정부와 의회 다수당의 불일치라는 ‘여소야대’의 이중권력화 현상으로 집권정당은 제대로 된 정책조차 펼치지 못하고 수렁에 빠져 책임정치를 구현하기 힘든 상황도 국민을 좌절시키고 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보수-개혁 세력 간 대연정을 구상했을 때보다 훨씬 후퇴하고 있다. 민주당 역시 노무현 정신을 외치지만 진보의 가치는 온데 간데 없고 집권욕에 사로잡혀 있고, 심지어 개인 사당화(私黨化) 조짐마저 보인다는 점에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세력과 진보세력 역시 각자의 철학과 정책 경쟁이 부재한 채 오로지 집권에만 눈이 멀어 있다. 현 5년 단임제 대통령제와 맞물려서 유지되는 패권적 거대 양당은 현재의 소선거구제 하에서 사표 현상을 방기한 채 기득권 집단화했다. 때문에 현 선거제도 하에서 민의 대표성과 비례성은 왜곡되기 일쑤이다. 2020년 21대 총선 결과를 보면 한국 선거제도의 폐단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당시 더불어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얻는 정당득표율은 33.4%였지만, 가져간 의석수는 수도권 전제 의석 121석 가운데 85%인 103석을 가져갔다. 33.4%의 정당지지율이라는 민심이 공정하게 드러난 것인가? 이번 4월 10일 22대 총선에서 부산지역 민주당 후보 득표율은 최근 19대 총선 이래로 가장 높은 45.14%를 차지했지만, 의석수는 전체 18석 가운데 1석만을 얻었다. 한 끗 차이로 진 것이다. 사표 비율이 월등히 높다. 선거결과가 최대한 민심을 대변할 수 있는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소수 정당들이 지역구 당선이나 비례대표를 통해 의회로 입성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비례대표 의석 수가 불과 46석에 불과하기에 소수정당과 다수당이 병존할 수 있는 다당제와 연합정치의 가능성 역시 차단된 상황이다. 한국정치에는 비뚤어지고 실체 없는 보수주의와 진보주의가 대결하면서 극단과 혐오정치를 양산하고 유지할 따름이다. 따라서 극단적으로 대립으로만 치닫는 현재의 한국 정치를 개혁하려면 정치제도개혁이 필요하다. 즉 현재의 대통령제보다 민주주의를 더 잘 구현하고 있는 의원내각제로 개헌을 이루고, 국회의원 의석수 역시 현재의 300석에서 100석을 늘려 총 400석으로 하고, 그 가운데 비례대표 의석수를 현재보다 많은 약 150석 정도 확보하는 것이 정치제도 개혁의 첫 과제라고 본다. 의원내각제 개혁, 비례대표를 대폭 확대하여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도입, 그리고 지역구 의석 역시 중선거구제를 통해 사표를 방지하는 것도 역시 필요하다. 이런 비례대표제도의 개혁이 없다면 이번 22대 총선 비례정당 득표에서 돌풍을 일으킨 조국혁신당의 사례는 일과성에 그칠 수 있다. 이같은 정치제도 개혁이 단행될 경우 바야흐로 한국 정치는 정치 선진국 독일처럼 극단적 대립보다 경쟁적 다당제 체제 하에서 대연정 혹은 소연정과 같은 연합정치, 연립정부가 가능할 것이다. 진보와 보수세력 간 조화와 타협 그리고 협력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고, 그 결과 한국 정치는 국민의 기대와 요구를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안정되고 조화로운 민주적 정치제도를 갖추게 될 것이다. 사회 안정과 조화를 이루려면 내각제 하 다당제가 답이다.
둘째, 한국의 기형적이고 비대화된 수도권의 과밀화와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지역균형발전을 이뤄낼 수 있는 정치-사회-경제-교육제도 개혁 역시 필수적이다. 특히 고등교육제도 개혁과 관련하여 국가는 거점국립대 집중 육성을 통한 수도권 과밀화 해소 및 지역경제의 활성화 추진, 국립대 출신자들의 공기업 취업 쿼터제 확대, 국립대 무상화 실시, 대학균형발전법 제정, 지방자치제도의 확대 등이 필수적이다.
셋째, 한국 사회 최대 현안이 되어 있는 저출산율을 막기 위해 출산을 장려할 수 있는 일련의 사회제도 개혁, 즉 교육제도 개선, 부동산, 취업, 육아제도 개선 등 일련의 사회보장제도 등이 대대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인간존엄이 침해되지 않는 ‘사회국가’ 시스템의 도입으로 함께 더불어 사는 복지국가, 사회국가를 제대로 실현해야 할 때이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가 2002년에 명시했듯이 “ ‘사회국가’는 사회정의 이념을 헌법에 수용한 국가, 사회현상에 대해 방관적인 국가가 아니라 경제 · 사회 ·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정의로운 사회질서의 형성을 위하여 사회현상에 관여하고 간섭하고 분배하고 조정하는 국가, 궁극적으로 국민 각자가 실제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 조건을 마련해 줄 의무가 있는 국가이다”(헌법재판소 2002.12.18. 선고. 2002 헌마 52). 자유시장경제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시장경제를 통해 안정과 조화, 그리고 발전과 복지를 동시에 실현하고 있는 독일, 전범국가에서 모범국가로 세계 1등 국가가 된 독일은 사회국가로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독일의 경우 합계 출산율은 1.58(2021년)로 선진국 가운데 수위를 달리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0.67(2024)로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독일은 인구가 늘고 있으니 노동가능인구 유지, 세수확보, 연금제도 운용, 복지 유지에도 걱정 없는 선순환의 복지 사회국가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꿈 같은 사회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 헌법 1조 1항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추상적 문구 대신 사회국가인 독일의 기본법(헌법) 1조 1항의 두 문장이 더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즉 “인간의 존엄은 침해되지 아니한다. 모든 국가권력은 이를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를 진다”. 사회국가의 역할을 우리나라 87년 헌법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헌법 10조, 34조 1항, 제 37조 2항, 제 119조 2항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그리고 이번 의대증원 사태를 보며 국가의 존재 이유를 다시 되묻게 된다. 현실을 들여다보면 헌법 조항이 공문구로 그치고 있음도 발견하게 된다. 무엇보다 인간 존엄이 침해되지 않고 존중되고 보호받는 사회국가가 제 역할을 할 때이다. 공동체가 붕괴되고 개인과 직역(職域) 이기주의가 난무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다시 한번 책임있는 사회국가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국가의 부재와 ‘정부실패’ 속에서 사법부 판결에 휘둘리지 않는 말하자면 ‘정치의 사법화’를 차단할 수 있는 사회국가의 역할이 절실한 때이다. 끝.